고려인지원센터 ‘너머’ 김승력 대표

“체류 자체가 불안정한 고려인들, 동포로 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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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러시아로 떠났던 김승력 대표는 연해주에서 처음으로 고려인 동포를 만났다. 생김새가 똑같은 동포에 마음이 끌려 쫓아다닌 시간이 어느덧 20. 현재 안산에만 15천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고, 이 중 7천여 명이 선부동 땟골에, 5천여 명이 한양대 근처 사동에 터를 잡고 있다. 그가 말하는 고려인에는 뭔가 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구 소련의 고려인 그리고 현재는

1860년대 러시아가 청나라와 북경조약을 맺고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되면서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군량미가 필요했던 러시아는 함경도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한다. 조선 말기 폭정과 흉년이 겹치면서 많은 한인들이 떠났고, 이후 1910년 나라를 빼앗기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안중근, 신채호, 이상설 선생이 모두 연해주에 근거를 두고 활동했다. 이때부터 원래 연해주는 발해, 고구려, 옥저가 있던 우리민족의 고토라며 고려인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한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으로 5km가 떨어진 중아아시아에 내던져진다. 20만 명이 출발했지만, 두 달 동안 물도 없던 화물차에서 2만 명이 죽는다.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겨울을 버텨낸 후, 봄이 오자 다시 농사를 짓고, 몇 년 만에 한인 집단농장까지 만든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소련이 무너지면서 다시 시련이 닥친다. 중앙아시아 나라들이 독립해 민족 정체성 회복 작업을 벌이면서, 공용 언어와 사회적 지위가 한 순간에 바뀐 한인들은 다시 떠돌이 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일부는 다시 연해주로 돌아갔고, 일부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현재 국내 고려인들이 5만여 명 정도인데, 계속 늘 것 같다. 문제는 비자 때문에 계속 거주하기 어렵다는 거다. 처음에 3년 비자, 110개월을 연장한 후 새로 받아야 한다. 기간이 오래 걸리니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20~25세 청년들은 아예 비자가 안 나와, 성인이 되면 떠나야만 한다. 체류가 불안정하니 정착도 힘들다. 한국어를 못하니 고국에 돌아와서도 외국인과 똑같은 취급이다. 새벽 인력시장이나 파견업체 통해 최저시급 일용직으로 일한다. “이제 어디 가서 살아야 될지 모르겠소.”라는 하소연이다.

 

고려인지원센터에 시민들의 관심을

안산 땟골에 왔더니 고려인들이 힘들게 살고 있었다. 6평짜리 반지하에서 한글이라도 가르치려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면서 공간도 조금씩 넓어졌다. 현재 땟골의 고려인지원센터다. 어느 날 보니 사동에도 5천 명이나 살고 있었다. 마침 사동에 사는 고려인 사업가 한분이 1년 치 임대료를 선납하며 센터 운영을 요청했다. 2014년부터 사동에 분소를 열었다. 밤엔 한글을 가르치고, 낮에는 아이들 대상으로 돌봄 교실을 운영한다. 선생님들 임금 마련도 어렵다. 많은 관심 바란다.

고려인들은 매일 새벽에 나가며 일요일 딱 하루 쉬는 고된 삶을 살지만, 씩씩하게 잘 살아간다. 150년을 떠돌면서도 까레이쯔라는 자긍심으로 살아왔는데,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러시아나 우즈벡 사람 취급 받을 때가 가장 서럽고 힘들다는 거다.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그냥 우리 동포로 대해주면 좋을 것 같다. 

 

문의 : 고려인지원센터 너머(031-493-7053)

송보림 명예기자<treehelper@gmail.com>